[컨택저널 2024년 8월호]
[2024 Special Column] Chat GPT시대 휴먼 상담의 방향
(8) 친절보다 친밀감
Chat GPT시대 컨택센터 Human상담사의 역할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고 그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컨택센터 구성원들에게 제언하는 12가지 주제를 1년간 고정 칼럼으로 게재한다.
요양원으로 모시게 된 친정엄마의 자동차를 인수해야 해서 자동차 보험회사 5군데에 전화를 했다. 명의 변경을 위한 대동소이한 통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각 회사마다 차이가 도드라졌다. 변경 절차 및 보험료 할인 등 기본사항만 안내하고 업무적으로 통화를 마무리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나 싶을 정도로 친밀한 상담을 제공하는 회사도 있었다. “어머님 차를 인수하시는군요.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마음이 안 좋으시겠어요. 우리 따님이 효녀시네요. 고객님께서 이 혜택을 꼭 보시면 좋겠어요” 등 사적인 대화를 하듯 친근했다. 대화 맥락에 맞는 적절한 위로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적절한 시점에 자기 회사의 차별점을 어필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빨리 통화를 끝내고 싶어서 통화 중에는 상담사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오히려 여운이 남았다. 업무대화만 했던 상담사는 기억에서 다 지워졌는데 친밀감을 드러낸 상담사는 기억에 남고 마음이 끌렸다.
이것은 나만의 각별한 취향은 아닐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사)한국컨택센터산업협회에서 발간하는 컨택저널에 게재된 ‘콜센터 디지털 채널 이용 실태조사’에서도 이를 시사하는 결과가 있다. 「공감」 만족도가 낮는 고객은 ‘상품 서비스 지속이용 의향이 있다’라는 질문에 5%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다시 말해 「공감」에 불만족한 고객은 무려 95%가 이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공감」이 고객충성도의 핵심요소이다. 특히 디지털 채널과 달리 휴먼 채널에서 고객이 각별히 기대하는 것은 「인간적 공감」이다. ‘공감’에 대한 사전기대가 큰 만큼 살짝만 그 기대를 빗나가도 실망이 크다.
여기서 말하는 「공감(共感)」이란 무엇일까? 친절하게 호응하는 것일까?
이제 그 정도는 대부분의 회사가 비슷한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되었다. 상담 매뉴얼에 공감 맞장구 표현이 수두룩하고 호응 표현을 몇 번 이상 하도록 필수 언급 횟수까지 정해 놓는다. 친절하지 않을 때는 친절함이 경쟁력이었지만 모두가 친절할 때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내가 5군데 보험사에서 경험한 작은 차이는 바로 “친밀감”이었다. 형식상 하는 공감이 아니라 진정하게 고객상황에 맞추어 고객을 주인공으로 대하고 고객에 관하여 대화를 하는 기술 말이다.
친밀감(Intimacy)의 어원은 중세 라틴어인 "내부의", "근처의", "가까운"이라는 "intimus"에서 파생되었다. “깊은 내부의 연결”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심리적 가까움”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어색한 거리감이 있을지라도 먼저 마음을 열고 가깝게 대하는 태도이자 예전부터 알던 지인처럼 진전된 관계를 설정하는 능력이다. 이는 상담사에게 큰 도전이다. 빨리 상담을 끝내야 하는 시간적 압박감을 무릅써야 하고 무덤덤한 고객 반응에 민망해하지 않아야 한다. 까칠하게 의심할지라도 영향 받지 않아야 하고 조급하게 불안해할지라도 노련하게 달래야 한다.
이것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만 답을 찾아내는 인공지능으로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똑똑한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기술일지라도 고객의 변화무쌍한 상황과 미묘한 감정은 예측해내기 어렵다. 오직 인간만이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하여 고객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사실 고객과 상담사는 같은 시간에 함께 대화를 나누지만 각자 서있는 생각의 페이지가 다르다. 동일한 영토에서 만나지만 각자의 정신지도는 다른 곳에 위치해있다. 책잡히지 않으려고 정해진 말만 하는 상담사와 속지 않으려고 의심하며 듣는 고객사이의 거리는 지리적 거리감을 뛰어넘는다. 상담사는 열심히 안내하고 고객은 귀 기울여 참고하지만 각자 먼 발치에서 자기 얘기를 할 뿐이다. 이제 휴먼 상담사는 끝까지 듣고 바르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고객의 생각 페이지로 이동하여 고객을 자신의 페이지로 데려와야 한다. 바로 섬세한 친밀감 말이다. 과도하면 부담스럽고 맥락에 안 맞으면 저의가 의심스러운 친밀감은 결코 단순한 스킬이 아니다. 아슬아슬 외줄타기처럼 균형이 필요하다. 고객이 갖고 있는 불신과 불안의 벽을 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과하게 선을 넘어서도 안된다. 매뉴얼에 얽매여서 영혼 없이 정보만 전달해서도 안되지만 맥락 없이 친한 척해도 안된다.
요즘 친밀감 품귀시대다. 코로나 이후 모임도 줄었고 심지어 가족 하고도 데면데면한다. 굳이 누군가와 친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안에 세상이 가득해서 혼자 놀기도 바쁘다. 친밀감을 개발할 기회가 줄어들었고 친밀감을 발휘할 순간도 많지 않다. 친밀감은 정보와 지식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관심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고객이력 정보와 상담지식이 전산에 넘쳐 나도 친밀감을 부추기지는 못한다. 지식이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지식이 늘어나면 덜 지혜로워지기도 한다. 휴먼 상담사의 지식 못지 않게 지혜를 키우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 글 > ㈜윌토피아 지윤정 대표(toptm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