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이 다 되었으니 가을이 와도 벌써 왔어야 하는데 아직도 낮에는 더우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은 어디 있는 걸까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를 않네요. 어디 가을을 본 사람 없나요? 가을을 본 사람이 계시면 연락 주세요. 후하게 사례하겠습니다.
이처럼 가을이 조금 늦게 오는 일로 투정을 부리고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기후가 심상치 않습니다. 올 여름 베트남, 미얀마, 중국, 필리핀, 일본 등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특히 11호 태풍 ‘야기’로 인한 사망자수는 베트남은 250명이 넘었고, 미얀마도 4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미국도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헐린’으로 2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 가운데 수해의 참상을 전했던 강아지를 안고 울던 어린 소녀의 사진이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가짜로 밝혀져 물의를 빗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날씨는 제 정신이 아닌 듯 합니다. 술 취한 것인지 아님 마약에 취한 것인지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으로 많은 나라에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에 비해보면 우리나라는 행복한 편입니다. 그래도 올 여름은 역대급 폭염으로 기록이 될 정도로 더워도 너무 더웠어요. 이는 전문용어로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한반도 전역에 이중 열돔(지상 10km이내 상공에서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됨으로써 반구 모양의 열 막이 형성되어 뜨거운 공기를 그 자리에 가둬 놓는 기상 현상)을 만들어 높은 습도와 푹푹 찌는 열대야가 장기간 지속된 결과였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글쎄 후덥지근하기로 유명한 동남아에서 여행 온 관광객들이 하는 말이 한국의 여름이 그들 나라보다 더 덮고 습해서 여행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들에게 더워도 너무 더웠던 여름의 이미지보다는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어찌 되었든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한반도는 뚜렷한 4계절로 나뉘어지므로 12월부터 2월까지 겨울이고, 3월부터 5월까지는 봄, 6월부터 8월까지 여름, 9월부터 11월까지 가을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가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10월 중순에서 하순으로 넘어가는 때이니 가을이여야 맞습니다. 그런데 아침과 저녁으로는 쌀쌀한 게 가을이 온 듯한데 아직도 낮은 덥습니다. 조금 빨리 걸으면 땀이 납니다. 가을이 인간과 밀당을 하는 모양입니다.
특히 올해 추석(9월17일)은 너무 빨리 오는 바람에 벼가 제대로 영글지 않아 햅쌀로 지은 밥을 차례상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추석날 당일 아버님이 계신 대전 현충원으로 성묘를 다녀왔는데 오전이었음에도 어찌나 더운지 커다란 양산을 가져와 그늘막을 만들어 놓고 성묘하시는 분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특히 아버님 묘에서 2km 떨어진 곳에 계신 외삼촌 묘역까지 걸어 갔다 왔더니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속옷은 말할 것도 없고, 겉옷까지 다 젖어버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땀 냄새 날까 마음 졸여야 했습니다.
물론 이보다 더한 경험을 한 적도 있습니다. 오래 된 이야기인데 당시 손석희씨가 진행하던 MBC ”선택 토요일이 좋다”에서 국내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를 맡아 파트너인 김혜영씨와 4월말에 1박2일로 소백산의 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촬영 갔었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결국 눈 덮인 겨울 풍경을 5월에 방송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계절은 변화무쌍하지요.
그렇더라도 우리가 어릴 적부터 알고 있는 친숙한 가을을 찾습니다. 가을이 되면 하늘은 맑고 푸르르며 말이 살이 찐다고 하여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했지요. 시원한 바람이 불고, 한들한들한 코스모스 꽃도 피며, 산에는 주황색, 빨간색, 노란색으로 물든 단풍잎으로 뒤덮여야 제 맛이지요.
오늘 비가 엄청 내리고 있습니다. 내일까지 비가 오고, 난 후 아침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제 정말로 가을이 오려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다 바로 겨울이 들이닥칠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연지와 곤지 찍고 색동저고리 입고 화사한 모습을 한 가을이 우리 곁으로 왔으면 좋겠어요. 가을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서둘러야 해. 이러다가 겨울이 새치기 하겠어.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 너와 오롯이 즐겁게 보내고 싶어. 독서도 하고, 등산도 하면서…
(사)한국컨택센터산업협회 황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