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14(목)
 

[컨택저널 2024년 11월호]

 

[2024 Special Column] Chat GPT시대 휴먼 상담의 방향

(11) 불만고객 시프트 

 

Chat GPT시대 컨택센터 Human상담사의 역할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고 그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컨택센터 구성원들에게 제언하는 12가지 주제를 1년간 고정 칼럼으로 게재한다.


 

고객응대근로자 보호법 시행 이후 막말하는 고객은 많이 줄어들었다. 심하게 욕하거나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고객은 드물어졌지만 요목조목 집요하게 따지는 고객은 점점 늘고 있다. 인격모독까지는 아니지만 집요하고 논리적으로 불만을 제기해 친절한 사과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미안하다는 말은 됐다, 당신 잘못이 아닌거 안다, 이 불편을 어떻게 보상할지 그것만 알려달라” 라고 차분하고 냉랭하게 해명과 보상을 원한다. 게다가 한 고객이 한 사안으로 인터넷, 게시판, 채팅, 댓글 등 전화를 포함한 모든 채널을 이용해 동시에 불만을 개진한다. 각 채널 중에 하나만 삐끗해도 책 잡히게 되고 보상의 명분이 된다. 지독한 두통은 아니지만 일정한 강도로 계속 찌뿌둥하게 머물러 있는 미세한 두통 같다. 아주 심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적절한 출구를 찾지도 못한 채 몇일씩 지지부진하다.

 

불만 고객의 문제는 화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 소라껍데기처럼 맴돌면서 증폭된다. 첫 콜에 바로 해결이 안되고 2~3번에 걸쳐 재차 확인을 해야 한다. 고객채널이 많아져서 자체 몰뿐만 아니라 각 판매 사이트 별 프로모션, 할인정책 등 확인할 게 많아졌고 관련자도 늘어났다. 생산업체, 물류업체 뿐만 아니라 배송기사와 배달장소 경비실까지 확인해야 할 때가 있다. 이 과정에서 직원의 응대태도 보다 “절차의 불편함, 시간 지연, 약속 불이행,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함” 등의 이유로 고객불만은 소복이 쌓여간다. 갑자기 한 주먹으로 휘갈기는 폭력이 아니라 서서히 기운을 빼앗아가는 심리적 고문 같다. 

 

이럴 때 휴먼상담사는 뒷목이 뻣뻣해지고 심장이 조여온다. 챗봇 만큼도 권한이 없는 상담사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는데 고객은 로봇만도 못하냐며 추궁한다. 늘 있어왔던 불만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반복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고객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새로운 약속을 하기도 두렵다. 시지프스의 노동처럼 반복되는 고객불만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그날 그날 모면하기에 바쁘다. 양해를 구하지만 영혼이 없고 설득을 해보지만 의지력이 안 생긴다. 고된데다 헛되다고 느껴진다.

 

예전 불만응대의 핵심은 친절한 태도였다. 당황하거나 대들지 않고 친절하게 사과하고 지침대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 만으로는 안된다. 그러기엔 너무 복잡다단하고 너무 관련자의 변수가 많다. 고객불만은 지능을 갖고 처리하는 게 아니라 지성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갖지 못한 휴먼지능의 지성 말이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에 곧바로 정확한 답을 내놓는 “지능”이 아니라 답이 없는 불만에 탐구하는 질문으로 최적안을 계속 탐색하는 “지성”이 필요하다. 문제를 단순화해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빠르게 결론지어서 얼른 매듭짓고 싶은 마음으로는 지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섣부르게 결론짓기를 멈추고 탐색하는 자제력, 판단의 저변에 깔린 냉소와 체념을 뛰어넘는 의지력, 답 없는 물음에 차분히 대처할 수 있는 주의력, 이런 것들의 총합이 지성이다. 바로 휴먼 상담사만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성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와 관련이 있다. 자신을 안내하는 사람이 아니라 탐구하고 제안하고 돕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자기개념의 기반위에 피어난다.  자신을 지식을 전달하고 처리하는 사람으로 여기느냐, 지성을 갖고 판단하는 사람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지성이 발현되기도 하고 사그라들기도 한다. 사과할지언정 제안하기는 어렵고, 안내할지언정 설득하기는 두렵다는 마음의 제약이 있으면 발휘될 수 없다.

 

이제 표준화된 지침을 안내하는 것은 챗봇도 한다. 사람은 좀더 심층적이고 유연해야 한다. 어디까지 고객의 마음을 공감하며 이해시켜야 하고, 어디서부터 제도 개선을 위해 회사에 요청해야 할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규정은 이러합니다.”가 아니라 “고객님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게 이 점이시죠? 그렇기 때문에 감히 이 방법을 추천 드립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이 고객님 편에서 가장 최선이실 거 같은데 저를 믿고 수락해주시면 어떨까요?”라고 리드해야 한다. 만성적인 문제여서 뻔한 결과가 예상되더라도 의식적으로 주의력을 기울여야 한다. 

 

“처음 본 뇌 삽니다”라는 밈(meme)이 있다. 굉장히 좋은 경험을 했을 때,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때로 되돌아가서 다시금 그 행복을 느끼고 싶을 정도로 좋다는 찬사다. 좋은 경험도 반복되면 식상해진다. 고객불만도 여러 차례 반복되다 보니 타성에 젖어 선입관을 갖고 기계적으로 처리한다. 으레 그러려니 하고 지레 포기한다. 휴먼 상담사에게 “처음 본 뇌”처럼 의식적 주의력과 의도적 탐구심이 필요하다. 고객불만 이슈는 계속 반복되어 왔어도 고객불만을 제기하는 지금 이 고객은 처음 겪는 일이다. 문제는 같아도 사람이 다르다. 우리에겐 101번째 처리하는 반복되는 문제일지라도 불만고객에겐 첫번째 겪는 심각한 문제이다. 

 

불만 고객이 달라진 만큼 불만고객을 돕는 휴먼 상담사도 달라져야 한다. 신속 정확 친절한 정답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상황을 알아보고 현재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해답이 무얼까 찾아보는 상담으로 진화해야 한다. 같은 문제일지라도 사람이 달라지면 다른 최적의 해답이 나올 수 있다. 지능을 넘어 지성으로 진화하는 일은 휴먼 상담사를 더 깊고 넓고 울림 있는 소통 전문가로 만들어 줄 것이다.

 

< 글 >   ㈜윌토피아 지윤정 대표(toptm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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